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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5, 2020

칠레, '50원 인상'에 폭발한 50년 억눌림…오늘 국민투표로 푼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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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50원 인상’에 폭발한 50년 억눌림…오늘 국민투표로 푼다
최현준의 DB_Deep
지난 18일(현지시각) 칠레 대규모 반정부 시위 1주년을 맞아 산티아고 시민들이 이탈리아 광장에 모여 행진을 하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각) 칠레 대규모 반정부 시위 1주년을 맞아 산티아고 시민들이 이탈리아 광장에 모여 행진을 하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남미의 스위스’로 불리던 칠레가 불타올랐다. 지하철 요금 30페소(50원) 인상 방침이 도화선이 됐다. 학생과 주부들이 거리로 나와 냄비를 두드리며 시작한 ‘못살겠다 갈아보자’ 시위는 금세 시민 100만명이 모이는 칠레 사상 최대 규모 시위로 폭발했고, 곧 칠레 사회를 재설계하자는 ‘헌법 개정’ 요구로 이어졌다. 25일(현지시각) 칠레 유권자 1400만명은 칠레의 미래를 새로 설계할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에 들어간다. 시민들이 낡은 유물인 ‘50년 불평등’의 역사를 깰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_______
신자유주의 모범국? 살인물가, 세계 최악 빈부격차
지난 1년 동안 칠레 사태를 지켜본 이들의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남미 최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칠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무엇이 작은 불씨를 국가의 정체성을 재설계하는 개헌 요구로까지 이어지게 했을까? 지난해 10월6일 칠레 정부는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1320원)에서 830페소(1370원)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화폐 가치 하락이 이유였다. 정부 발표에 학생들이 먼저 반발했다.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고 출입구를 뛰어넘는 시위를 벌였다. 작은 파장에 그칠 것 같았던 시위는 곧 태풍처럼 커졌다. 부자들은 참 살기 좋다는 ‘헬(hell) 칠레’의 높은 물가와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칠레에서 한달에 20일 지하철로 출퇴근 하면 5만2800원이 든다. 50원이 오르면 5만4800원이다. 한국(현금 1350원, 한달 5만4000원)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득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칠레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4896달러로 한국(3만1838달러)의 절반 정도다. 실제 소득으로 가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올해 칠레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월 32만500페소(46만원)다. 한국의 월 최저임금 179만5천원의 4분의 1 정도다. 칠레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월급(2018년)도 57만3964페소(85만원)로, 한국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한달 지하철 요금이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차지하는 비중은 칠레가 12%, 한국이 3%다.
지난해 10월27일(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시 오이긴스 공원에 시민들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지난해 10월27일(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시 오이긴스 공원에 시민들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이런 고물가는 교통요금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보면, 지난해 칠레 대학들의 평균 등록금(OECD)은 연간 9776달러다. 한국의 1만1948달러보다 적지만, 역시 소득 대비 매우 높다. 노동자 월급 1년치를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다. 칠레는 일찍부터 가스와 전기발전도 민영화해 관련 요금이 비싸고, 의료비도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 산티아고 외곽의 원룸도 월세가 300~400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 교민들이 모이는 누리집 카페에는 “칠레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 돈이 많으면 살기 좋지만 여기서 번 소득만으로는 살기 어렵다”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에 비해 물가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부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 칠레의 빈부 격차는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2017년 기준 칠레에서는 상위 1% 부자가 전체 부의 26.5%를 차지한다. 하위 50%가 차지하는 부는 전체의 2.1%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를 보면 2016년 기준 상위 1% 부자들이 전체 부의 12.2%를 차지한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 20.5%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2017년 0.46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데, 한국은 2018년 기준 0.345다. 칠레 인구의 45%가 빈곤층에 속해 있다. _______
비극의 씨앗, 군부독재·신자유주의 결합
대규모 시위 사태 직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지하철 요금 인상 방침을 철회하고 기초연금 20% 인상 방안 등을 내놨지만 시위는 잦아들지 않았다. 칠레 시민들은 “30페소가 아닌 30년이 문제”라며 개헌을 요구했다. 현재 칠레 사회의 모순이 30년 전 잉태돼 현재까지 곪아왔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 칠레의 모순은 그보다 좀더 앞선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1973년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밀턴 프리드먼 등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라 불리던 미국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들을 데려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폈다. 칠레는 유례를 찾기 힘든 ‘신자유주의 실험장’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시장을 개방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경제불안에 시달리던 칠레는 시장자유화 조치로 외국 자본의 투자가 늘고, 대기업이 성장하는 등 경제적 안정을 이뤘다. 하지만 부작용이 뒤따랐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교육 등이 시장에 맡겨지면서 민간과 공공이 대립하는 구도가 됐고, 곧 부익부(민간) 빈익빈(공공)으로 수렴됐다. 1990년 독재자 피노체트를 몰아내고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경제적 방향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좌우파가 번갈아 정권을 잡으면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화됐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힘입어, 칠레는 2010년 남미 최초로 경제개발협력기구에 가입했지만 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낡은 공립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고, 질 낮은 의료시설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며, 은퇴 뒤에는 작은 연금으로 빈곤한 생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지난해 10월23일(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바케다노 장군 기념 동상 주변에 반정부 시위 군중이 모여들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지난해 10월23일(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바케다노 장군 기념 동상 주변에 반정부 시위 군중이 모여들고 있다. 산티아고/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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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문항 2가지…새 헌법 동의? 새 제헌의회 구성?
50년 가까이 불평등에 시달려온 칠레 시민들은 근본적인 개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못살겠다 바꿔보자’는 요구가 ‘헌법을 바꾸자’는 요구로까지 나아간 결과다. 지난해 칠레 사회는 시위 한달이 채 안된 11월15일 새 헌법 제정 여부와 헌법 작성 주체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하기로 합의했다. 노동시간 축소, 약값 인하 등 시민들 요구를 반영하는 조치에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취한 고육책이었다. 이듬해인 올 4월 예정됐던 국민투표는 코로나19 사태 탓에 6개월 미뤄져, 오는 25일 진행될 예정이다. 칠레 헌법은 1925년 제정돼, 피노체트 시절인 1980년 한차례 개정됐고, 이후 40년만에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칠레 시민들은 과거 독재 시절 만든 헌법이 정당성이 없으며, 시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등 국가 책임을 도외시하고 사유 재산과 경제적 자유 등을 보호하는데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칠레 시민들은 새 헌법에 교육, 의료보험, 연금 등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원주민 등 소외된 이들의 인권 보장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5일 국민투표에서 칠레 시민들은 두 가지 문항에 답해야 한다. 첫째, 새 헌법 제정에 대한 동의 여부다. 둘째, 새 헌법을 쓰는 주체로 완전히 새로운 제헌의회를 꾸릴 것인지, 아니면 기존 의회와 새로 뽑은 시민대표를 절반씩 섞어 제헌의회를 꾸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헌법 제정에 찬성하는 의견이 70% 이상이고, 새로운 제헌의회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60% 안팎에 이른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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