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며 해외 언론에 한국 입장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통상장관으로 불리는 현 직책에서 공정한 글로벌 교역질서와 한국 기업의 이익 보호에 애쓰는 것처럼 당시에도 국위 선양의 첨단에 선 관료였다.
그런데 올해 세계무역기구(WTO) 신임 사무총장직에 도전한 그의 주변 상황을 보면 우리 정부가 목표 성취를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WTO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해 164개 회원국들의 후보별 선호도를 조사하는 방식을 취한다. 직접투표가 아닌 비공개 의견 회신인데 28일(현지시간) WTO가 공개한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안타깝게도 유 본부장은 라이벌 후보인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게 뒤졌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전체 회원국의 62% 이상이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했다. 이에 따라 유 본부장이 담대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다수의 지지를 획득한 후보자에게 세를 몰아주는 게 WTO가 추구해온 게임의 룰이다.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미국이 유 본부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다음달 WTO 이사회에서 막판 역전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역전'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국제정치 현실은 이렇다. 앞으로 유 본부장과 한국 외교부는 "미국이 우리를 지지하니 나이지리아 후보 지지를 철회하라"며 각국을 회유해야 한다.
공정한 룰을 존중하는 한국의 통상장관이자 신중과 경청의 소유자인 그의 이미지와 비교해 어색한 행보다.
정부와 청와대의 욕심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2006년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시킨 영광을 재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WTO 사무총장 당선의 대가로 게임의 룰을 중시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잃는다면 이는 소탐대실이다.
커진 외교력을 자리싸움에 소모하기보다 젊고 유능한 관료들을 상대로 제2, 제3의 유명희를 키우는 게 진짜 '유명희 프로젝트'다.
[국제부 = 이재철 기자 hummi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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