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는 매년 겨울 어김없이 신입생 면접시험이 치러진다. 초보 교수는 약 10분의 면접에 차출돼 간다. 얼마 전 면접자였던 초보 교수는 면접원이 되어 면접장으로 들어선다. 서류를 살펴보던 중 교복 차림의 학생이 들어온다. 무릎 위 가지런히 올린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의 유대감을 느낀 초보 교수는 ‘가벼운’ 질문을 던진다.
“조경학과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어요?”
예상했던 질문에 밝아진 얼굴의 학생은 준비해온 ‘정답’을 말하고, 초보 교수는 곧 혼란에 빠진다. 내가 알고 있는 조경과 그들의 조경, 내가 배워온 조경과 그들이 배우고 싶은 조경, 내가 바라는 조경과 그들이 바라는 조경이 너무나 다르기에.
반나절 그들과 어울리다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즐겨찾기에 갈무리된 웹페이지에서 ‘조경’을 검색한다. 모니터 위로 조경나라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는 조경에 반나절 잠시 ‘비전문가’의 마음이 되어봤던 초보 교수는 현기증을 느낀다.
신입생을 대하는 초보 교수만 느끼는 감정일까? 각종 심의에서 그래도 조경을 이해한다 생각했던 인접분야 전문가들의 “위원님은 조경이나 말하세요!”에 황망함을 느낀다. 그럼 조경이 뭐예요?
누구나 고급 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지식을 특권화했던 전문가의 권위가 실종되고, 추락한 전문가에게 미디어 시장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대중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의 참 의미를 선별해 전달하는 ‘지식 소매상’, 어려운 지식을 일상의 언어로 지식과 대중을 잇는 ‘지식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기존보다 쉽고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하는 전문가들이 예능형 교양 방송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고 있다. 덕분에 얼마 전만 해도 외계어였던 뇌과학, 양자역학, 범죄심리학은 이제 다소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어떤 분야보다 대중에게 많이 노출된, 친 대중적이어야 할 조경은 현재의 교양 프로그램의 콘텐츠로 소비되지 못하고 있다. 공원과 정원을 좋아하고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에 비해, 그것이 조경가의 손을 거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기대만큼 되지 않는다. 조경 알리기 운동이 몇 년 전부터 이어졌음에도, 아직 조경 대중화는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유튜브에 조경을 검색하면 알고리즘은 곧 ‘극한직업! 전원주택 조경’과 ‘조경으로 월 4천만원 버는 조경의 달인’을 추천한다. 펭수가 소개하는 ‘꿈의 조경’은 2% 아쉽고, 국내 최초 가드닝 예능을 표방한 <가드닝 프로젝트, 꽃밭에서>는 조경계의 큰 기대와 달리 6회로 종영했다. 그렇다고 깜짝 스타, 혹은 동방의 귀인이 등장해 조경 알리기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도 요원하다.
인접 분야인 건축과 도시를 바라본다. 그들은 출판하면 베스트셀러, 출연하면 시청률 보장인 친 대중적 지식인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공공의 영역과 대중을 대하면서 나름의 영역확보를 위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생산된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도시공원일몰제, 도시숲법, 한국판 뉴딜 등 시대는 조경의 영역과 역할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 여론이 정책의 최종 잣대가 되는 대의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 아직은 서툰 조경의 친 대중 행보는 아쉽기만 하다.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속 사장님처럼, 발만 동동 구를 일은 아니다. 우리의 좋은 점, 그 문화적 행위를 대중을 향한 안목과 언어로 훈련이 된 ‘지식 소매상’ 조경가가 필요하다.
전문가의 지위에서 비전문가 대중을 일상에서 만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찾아갈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지자체 문화원, 도서관, 박물관, 백화점 문화센터 등 ‘교양’ 강좌는 조경을 알리려, 또는 훈련을 위한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 현재 개설된 조경 관련 교양강좌는 필자가 5학기째 강의 중인 ‘도시환경과 조경’이 유일하다. 반면 인접 전문분야에서는 ‘세계도시건축의이해’, ‘영화로보는도시건축’, ‘현대건축명작의이해’, ‘글로벌도시와창의적리더’, ‘커뮤니티디자인’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주제로 교양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물론 타학과 학생,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에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먼저 우리 안에 당연한 것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교과서로 삼을 만한 조경 대중서는 찾기 힘들다. 강의 내용은 단상 앞의 학생들에게 노골적으로 전달이 되고, 그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뼈아픈 강의평이 실시간 게시된다. 그렇기에 더욱 대학 교양강의는 조경 지식 커뮤니케이터 양성의 유격훈련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약 50여개의 4년 및 2년제 조경학과가 전국에 분포한다. 각 대학마다 조경 교양강좌가 개설되고, 매 학기 40~50명의 학생이 수강한다면, 어림잡아 매년 2,000명 정도의 조경 우군이 생기는 것은 덤이라 하겠다.
해를 거듭하면서 예약이 조기에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서울시의 ‘어린이 조경학교’와 ‘시민조경아카데미’, 전국 지자체의 ‘시민정원사’ 등 교양으로서 조경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증명됐다. 지난해 첫 번째 시즌이 종료된 젊은 조경가들이 만들어간 팟캐스트 <꽃길사이>, 조금씩 증가하는 조경 관련 유튜브 채널 등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뉴미디어에서도 교양 있는 조경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모두 조경의 저변 확대는 물론, 대중과 공감대를 나누는 조경가, 조경 지식 커뮤니케이터 양성의 좋은 토양이 될 것이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소위 비인기학과의 통폐합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 중 다수의 학과가 자연소멸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경이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 조경이 대중에게 지지받는 전문분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경지식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조경전문가가 필요하다.
July 30, 2020 at 01:3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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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칼럼] 조경,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 한국건설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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